“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사소한 이름들이지 모른다.
익숙함에 길들여져 잊기 쉬운 이름들
집, 이웃, 동네, 친구, 학교, 놀이터,
매일 걷던 거리, 하늘과 구름,
우리와 함께 자란 나무, 이름 모를 풀과 꽃들,
그 사소한 이름들을 다시 부르고 싶었다.”
어린 시절 보았던 나무들은 5층 아파트 보다 더 높이 자라 있었고,
낡고 허름한 아파트의 풍경은 많이 변한듯 보였지만, 동네 안을 걷다보니 금방 익숙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라지는 것들이 익숙한 도시에서, 아직 남아있는 풍경은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동네를 기록한 사진을 SNS에 공유하며, 온라인 신청서를 통해 사람들을 다시 그곳에 오게 하는 <개포동 그곳>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다시 말하는 이름, 2019>은 재건축으로 동네가 사라지기 전에 다시 가보고 싶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모으는 작업이다.
사람들은 다시 찾은 공간에서 흩어져있는 자신들의 기억을 찾으며,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되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함께 자란 나무의 기억을 되 찾기도 한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동, 호수로 사는 곳을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과는 달리 80년대 초 지어진 주공아파트는 동 번호나, 풍경의 일부나 나무만을 보고도 그곳이 어디인지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나 재건축이 시작되며 나무들이 베어지기 시작하자, 아파트 동에 적힌 숫자 없이는 장소를 분간하기 어려워졌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점점 더 풍경이 아닌 숫자로 기억하게 되고 있다. (사진작품+인터뷰 영상)
<다시 부르는 이름, 2019>은 사람들의 이주기간이 끝난 뒤, 남아있는 나무들의 시간을 기록한 작업이다.
2017년 여름부터 사진기록에 참여하신 분들 그리고 ’개포동 나무산책’ 프로그램에 참여하신 분들과 함께,
사라지게 될 ‘나무의 이름’ 을 짓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떠난 뒤, 그곳의 빈자리를 다시 가 보았다. 베어지고, 쓰러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나무들이 있던 곳.
그곳에 존재했던 나무들을 사람들이 지어준 ‘나무의 이름’ 을 통해 다시 기억하는 작업이다.
개포주공아파트의 경우, 오랫동안 재건축 이슈, 개발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혀져, 주거공간이 지니는 다른 의미는 많이 퇴색되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 언어가 달라 대화조차 시도해보지 않았던 대상들에게 공간의 기억을 통해 말을 건네며, 우리가 머물던 공간을 새롭게 볼 수 있기를 바랐다.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공간뿐 아니라 경제논리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동안 외면할 수 밖에 없던 나무는
앞으로도 재건축이 될 때마다 계속해서 뿌리 뽑혀야만 할까?
우리는 쉽게 허물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삶 속에서 멈춰 섰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게 있는 것처럼, 지나간 것을 돌아보았을 때도 예전에는 몰랐던 또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다. 아직 남아있는 풍경을 다시 바라봄으로써 잊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지금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길의 시작을 보게될 수도 있다.
“우리는 앞으로를 살아가기 위해서 기억한다.”